인생은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인생은 한 가지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곧 또 다른 일이 찾아오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실패한다 해도 그 즉시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리처드 칼슨)

모든 것은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옛날 어느 마을에 무척 현명한 노인이 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노인이 자신들의 질문과 걱정거리에 대해 지혜로운 답을 알려 줄 것이라 믿었다.
어느 날 마을의 한 농부가 그 현명한 노인을 찾아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르신은 현명한 분이시니, 제발 좀 저를 도와주십시오. 무서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르던 황소가 갑자기 죽어 버렸습니다. 이제 제게는 땅을 갈 가축이 하나도 없습니다. 제게 이보다 더 나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현명한 그 노인은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하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농부는 서둘러 마을로 돌아가, 이웃 사람들에게 그 노인이 미쳤다고 말했다.
분명 그 일은 농부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불행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노인은 왜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한데 바로 그 다음날, 튼튼하고 젊은 말 한 마리가 농부의 밭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그는 그 말을 잡아다가 죽은 황소 대신 일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말을 얻은 농부는 무척 기뻤다. 황소를 부릴 때보다 밭을 가는 일이 너무도 쉬워졌던 것이다. 그는 현명한 노인을 찾아가 사과했다.
“당신의 말씀이 옳았습니다. 현명한 분이시여. 황소를 잃은 것이 제게 가장 나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사실 축복이었습니다! 제가 황소를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면 말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제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 아닌가요?”
그러나 현명한 노인은 다시 한번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하고 말했다.
농부는 다시, 그 노인의 말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노인은 제정신이 아닌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농부는 앞으로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지 모르고 있었다.
며칠 후 농부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낙마를 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그는 다리를 다쳐 수확을 도울 수가 없게 되었다.
농부는, “이럴 수는 없어. 이제 우리는 굶어 죽게 되고 말 거야”하고 땅이 꺼질 듯 한숨을 지었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현명한 노인을 찾아갔다.
이번에 그는, “말을 얻은 것이 좋은 일이 아니란걸 어떻게 아셨나요? 당신의 말씀이 또 옳았습니다. 제 아들이 다리를 다쳐 추수를 도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번 일이야말로 제게
가장 나쁜 일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번에는 제 말에 동의하셔야 할 겁니다”하고 말했다.
하지만 전과 마찬가지로, 현명한 노인은 조용히 농부를 바라보며 연민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하고 말했다.
노인이 그토록 무식한 것에 화가 난 농부는 투덜대며 마을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 일이 있은 바로 다음 날, 마을에 군대가 들어와 몸이 성한 사람들은 모두 얼마 전 시작된 전쟁터로 끌고 갔다. 그 농부의 아들은 마을에서 전쟁터로 징용되지 않은 유일한 젊은이였다. 그는 다른 많은 젊은이들은 싸우다 죽을 것이 뻔한 잔인한 전쟁을 피하여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특별한 교훈을 들려준다.
실제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안다고 생각할 뿐이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 하고, 이것으로부터 거창한 사실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머릿속으로는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끔찍한 일들에 대한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것을 과장되게 부풀려 생각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사람들의 지나친 근심은 빗나가기 마련이다. 냉정을 유지하고 여러
가능성을 향해 마음을 열어 놓을 때에야 비로소, 결국에는 모든 것이 잘 되리라는 확신이 서게 된다.
다음을 반드시 명심하자. 모든 것은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리처드 칼슨)

스트레스를 대하는 방법

문제를 딛고 올라서라
사람들은 자신을 짓누르는 스트레스의 큰 원인이 일상 생활에서 부딪히게 되는 크고 작은 각종 문제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하지만 좀더 정확하게 평가한다면, 스트레스는 문제 그 자체보다는 문제에 직면한 사람이 그것을 다루는 태도와 더 관계가 있다.

다시 말해, 스트레스는 문제를 어느 정도로 심각하게 취급하는가에 달려 있다. 즉, 그것을 절대절명의 위급 상황으로 여기는가, 아니면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교훈으로 생각하는가에 따라 잘라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겪게 되는 문제들은 무척 다양해, 내용이나 크기, 심각성이 각기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인생에서의 ‘문제’는 우리가 무언가 ‘달라지기’를 바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문제를 붙잡아 안고 씨름하거나 문제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할수록 그것은 더욱 심각하게 느껴지며, 우리는 이로 인해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나 다행히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자신에게 다가온 문제를 인생을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불가피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더 나은 삶을 위한 교훈으로 받아들인다면, 어깨의 짐이 다소 가벼워진다.

–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리처드 칼슨)

태산은 한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는다. 

태산불양토양
泰山不讓土壤

태산은 한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는다.

이 말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조차도 수용할 수 있는 자만이 큰 인물이 될 수 있음을 비유한 것으로, 원문은 사마천의 <사기(史記)> ‘이사(李斯) 열전’에 실려 있습니다.

泰山不讓土壤(태산불양토양) 태산은 적은 흙 알도 사양하지 않아
故能成其大(고능성기대) 그렇게 커질 수 있고
河海不擇細流(하해불택세류) 하해는 실개천도 가리지 않아
故能就其深(고능취기심) 그 깊음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진(秦)나라 때 승상을 지낸 서예가 이사(李斯)는 원래 초(楚)나라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품은 뜻을 펼치고자 진나라로 가서 발탁돼 객경(客卿)이라는 벼슬에 올랐습니다. 객경은 다른 나라 출신의 인사를 등용시켜 벼슬을 주는 자리였습니다. 그러던 중 어떤 사람이 모종의 음모에 연루돼 축출되자 이사는 그를 변호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상소문을 올렸습니다.

“신이 듣건 대 땅이 넓으면 곡식이 많아지고 나라가 크면 백성이 많으며 병력이 강하면 병사가 용감해진다고 합니다. 태산은 본디 한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았으므로 그렇게 높을 수 있으며 하해는 작은 물줄기라도 가리지 않았으므로 그 깊음에 이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왕은 백성들을 물리치지 않음으로써 덕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백성을 버려서 적국을 이롭게 하고 빈객과 천하의 인재들을 내몰아 나라에 공을 세우지 못하게 하니 이는 적에게 병사를 빌려주고 도적에게 양식을 보내주는 격입니다.”

사람이 많으면 말이 많고, 말이 많으면 그 가운데는 진실과 거짓이 혼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권력자들은 제 입에 맞는 말만 들으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집니다. 이사의 상소를 본 진나라 왕은 그 사람을 내쫒지 않고 외려 벼슬자리에 오래 머물게 했다고 합니다. 이만하면 진나라 왕은 귀가 열린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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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닿을만한 태산도 따지고 보면 한 줌 흙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망망대해 바다도 따지고 보면 산골짜기에서 샘솟아 실개천을 이룬 작은 물줄기가 여럿 모여서 된 것에 불과합니다. 태산이 한 줌 흙을 무시하고 바다가 개천의 물줄기를 외면한다면 이는 뿌리와 근본을 망각한 것입니다. 천하를 호령하는 막강 권력도 따지고 보면 국민 개개인으로부터 생겨난 것입니다.

죽음에 관하여

아침 전화로 S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마도 술때문에 죽은것 같다. 자세한 내막은 더 알아봐야겠지만, 원래 술을 자주 많이 마셨던것 같았는데, 얼마전부터는 일도 쉰채 한달이고 두달이고 술을 계속 마셨던것 같다.  이또한 들은 이야기다.  “죽음”이란 현실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도, 죽음에 대한 짧은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고인주변의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못할짓이라도 하는것처럼 마음 한켠이 무겁다.

내 나이 마흔중반.. 학교 다닐때 친구들이 사고로 죽고, 그사이 삼촌이 돌아가시고, 얼마전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지금은 가까은 곳에 있으면서도 한동안 보지 못했던 지인이 그만 세상을 버렸다.  마음이 한동안 멍하고, 지금 약간의  두통도 그때문이라 핑계를 대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삼촌과 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때도 눈물이 나지않았다. .. 역시 주제가 무겁다..  다소 시간이 진정되면 다시 이어리라..

비가 온다..

 

영업시간을 저녁 9시에서 8시로 한시간 앞당겼다.  이번주부터(4,2,월)의 일이다.

골목에서 나는 담배냄새 때문이다. 저녁시간이 되면 숨을 못 쉴정도로 숨쉬기가 불편하다.  이전분들은 이웃간에 서로 조심하며 삼가하시느라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장사라는게 돈을 많이 벌려고 하는것이 상당수이지만, 그 과정에서도 필요한것이 있다. 자신의 일에서 최선을 다하되, 이웃에게 해가 되는 일은 고려하고 삼가야 되는 것이다. ……. 담에 이어서

나중에 할 수 있는 일에 대하여………

추운 날들이 가고, 쌀쌀한 초봄의 찬기운도 이젠 얼마남지 않은듯 하다.. 며칠전부터 겨울옷들이 한낮에는 조금 버거운듯이, 허리위로는 땀이 제법 날듯하고, 바지는 연신 걷어올렸다. 오늘도 가벼운 상의티에 봄면바지를 입었지만, 실내에서 조금만 움직이니 또 바지를 걷어 올리게 되었다..

뉴스를 읽고, 계속 반복되는 조금 다른 뉴스를 읽고, 다시 무료해서 책을 집어든다.. 정말 1분도 채 되지않아 눈이 스르르 감긴다.. 요즘 얘들 말로 군더더기없이 팩트다..ㅎㅎ 그리하여 또 시간이 남아…

문득 지금의 일상이 여러해동안 반복되다가(물론 크고작은 많은 변수들이 생기겠지만) 더 이상 지금의 활력이 사라지고,  심신이 노후화 된다면 그때 난 사회의 일원으로서 무엇을 할수 있을끼?  가만 생각해 보니, 지금의 어르신들은 무슨 일을 하고 계시지? 나이가 들어서도 원만한 직업과 수입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나이 60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할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지금 연세를 드신후에도 자기일을 하시고, 또 그곳에서 직접 수입을 낼 수 있는 어르신들을 보니 정말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든다…  “일”이라는 것은  목적이 있고, 수익이 되는 생산적인 활동이다. 그것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고, 자기의지로 유지 시킬수 있다면, 자기가 하고 싶은 모든 것들의 초석이 될것이다..

갈수록 몸과 머리가 쇠퇴해지고 긴문장 하나를 유려하게 지어내려는 의지자체도 시들해져버려, 이젠 더이상 사색하려는 시도자체도 귀찮아져버린 지금이다.

처음 하려했던 이야기와 다르게, 자꾸 쓸데없는 곁가지를 치는것도 집중력과 몇갑절이나 더 필요해진 인내의 짧은 주기때문이다.

일단 1,번역 2,사회복지사 3,인터넷쇼핑몰

새삼.. 생각나다…  싸우기 전에 이기려면 지금은 나는 무엇을 해야하나?

두부값이 1,500원에서 2,000원으로 올랐다.

이런추운 날씨가 이전엔 없었던것 처럼 연일 추운날씨 이야기로  난리난 요즘이다.

가상화페에 최저임금에 강추위에 모두가 맘을 옥죄어온다.

두부값이 500원이 올랐다.

음~~~

당연하다…  당연하다…

거대한 썰밀물의 시작으로 파도가 밀어닥칠때, 어느 한곳인듯 마른바닥일수 있으랴.